오늘의 단상(斷想)

[8.02 2009] <부평의 작은 배호>님과 배호님의 가요제 출전

BaiZZang 2009. 8. 2. 21:21

 

 

오늘은 8월2일, <부평의 작은배호!>라는 카페가 개설 1주년 되는 날이다.

 

어제 우연히 배호님에 관한 동영상을 찾아보다가 <부평의 작은 배호!>라는 카페를 발견하였고 바로 가입하였다.

 

카페지기 <부평의 작은배호>님이 "아직 비공개 카페"라고 하는데 모든 글을 회원이 아니어도 볼 수 있고 글도 쓸 수 있어서 실제로는 아마

가장 "공개적인" 카페이다. 그런데 카페 개설 날짜를 보니 오늘이 카페 개설 1주년이 되는 날이어서 위와 같은 축하사진카드를 만들어 그

카페에 축하글과 축하음악을 올려서 진심으로 축하하는 마음을 올려 보았다.   

 

나로서는 <부평의 작은배호>라는 분을 지난 7월 20일 제13회 배호가요제에 갔다가 노래하는 모습을 처음으로 보게 되었다. 

가요제 첫번쨰 출전자로 나와서 <누가 울어>라는 노래를 불렀는데 5층에서 듣는 현장음으로는 마치 배호님이 살아오신 걸로 착각하였고

깜짝 놀랄 정도 였다. 아니 어쩌면 더 배호님의 진한 향기를 깊게 느끼게 하는 배호님 목소리였다. 그 분 카페글을 보니 그 분은 가요제 전

배호님이 꿈에 나와서 노래를 잘 불러달라고 부탁하는 꿈을 꾸었다고 하는데 정말 배호님 정기를 이어 받은 건지 그날 감동은 굉장하였고

오늘까지 계속되고 있는 듯하다. 

 

배호가요제에서 <부평의 작은배호>님 이름은 <정상학>으로 소개되었고 모창상 2명중 두번째 호명이 되어서 동상 바로 전 모창상을 수상하여 동상 바로 아래 등급의 상이지만 대상을 못 받아 나로서는 매우 섭섭하였다. 아마 여러 분야별로 상을 주는데 모창상이 있어서 아무래도

배호님 노래를 가장 모창을 잘하였으니 그대로 모창상 수상자로 결정되고 나머지 대상을 비롯한 나머지 시상 부분에서 제외되었을 것 같다.

그날 출전한 17명 중 11명이 가수인증서를 수여 받았는데 수상분야는 그렇게 중요한 게 아닌 것 같이 생각이 된다.

 

배호님의 노래를 즐겨 듣는 나로서는 배호님 노래에 대하여 이 분에 거는 기대가 크다.

그 분의 목소리는 배호님 노래에 현재까지 아는 가수 중 가장 적합한 가수라고 생각되고 아직은 더 나은 분을 발견하지 못하였다.

 

인터넷 상에 올라져 있는 그 분의 다른 배호님 노래는 배호가요제에서 느낄 수 있었던 그런 감동을 주기에는 현장감도 이유가 되겠지만 노래 기법에 있어 아직 좀 다듬어야할 점이 눈에 많이 띈다. 그렇지만 이번 가요제 수상을 통해서 정식 가수로 입문을 하여 본격적인 가수로서

활동을 하게 되면 앨범 관련해서 작곡가등으로 부터 지도를 받아서 더 다듬어진 기법으로 더 많은 발전을 이룰 것으로 기대된다. 

 

배호님은 대부분 가수분들이 인정하는 "가수와 가수 지망생의 스승", 배호님이 부르신 노래는 그들의 "교과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배호님의 경우 가요제 출전과 가수로 걸어온 길은 어떠했을까?

 

배호님은 1960년대 초 서울 을지로 6가 천지카바레에서 드럼주자로서 노래를 부를 때 정식 가수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 KBS 주최의  

"신인가수선발대회"에 출전하였으나 여러 번 낙방을 하였다고 한다. 지금 생각해보면 도대체 이해가 되지 않을 것이다.

 

배호님이 "가요제"에서 여러번 낙방을 했다니...과연 정말 그랬을까? 그렇다.

 

배호님의 특유의 절규하는 울적한 가슴을 후려 파내는 '참 멋있고 건방진' 창법은 그 당시 가요제와 방송국에 전혀 받아 드려지지 않았다.

이런 이유로 배호님의 1962년 첫 취입 곡은 거의 방송을 타지도 못했고 1967년 발표된 <돌아가는 삼각지> 역시 처음에는 서울에서

아예 방송사에서 거부하여 결국 대구를 시작으로 전국적인 히트를 이루며 결국 화려하게 서울에 입성하게 된 직접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이러한 창법의 배호님 노래는 지금은 여러 팬들에게 배호님 노래에서 떠나지 못하게하는 "중독성이 높은" 마력이 되고 있어서 지금의

입장에서 보면 배호님의 노래가 그렇게 천대받던 시절이 있었다는 것 자체를 이해하기도 매우 힘들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이것은 여자가수 심수봉(1955.7.11 - 현재) 님의 비슷한 예를 살펴 보면 비교적 쉽게 이해가 될 수 있겠다.

 

심수봉님은 1978년 MBC 대학가요제에 자작곡 <그때 그 사람>이란 노래를 불렀는데 특유의 비음(鼻音) 섞인 발성법은 '저속한' 목소리로

취급받아서 일까? 입상하지도 못하고 그대로 낙방하였다. 그런데 그런 독특한 음색은 한 레코드사에 의해서 다음 날 바로 '인정' 받았다.

배호님 경우도 배상태 작곡가님에게 '인정'을 받고 그 분 노래를 통해서 배호라는 가수가 비로서 탄생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심수봉님은 1979년 1월 <그때 그사람>노래를 취입하여 앨범으로 발매된 몇 달뒤 전국적인 히트한 것은 마치 배호님의 <돌아가는 삼각지>

히트 이야기와 매우 유사하다. 또한 배호님처럼 정식 가수 데뷔전 나이트크럽에서 아마추어 가수로서 아르바이트로 노래하였고 음반 취입도 하려고 했지만 그 당시에는 노래 취입도 거부를 당했었다고 한다.

 

오늘날에는 "가요제"에서 낙방했던 배호님과 심수봉님의 창법과 그 분들 "유행가"에 의의를 달지 않고 많은 팬들이 환호한다.

이것은 그 분들의 창법이 그당시에는 생소해 보여서 새롭게 "유행할 노래"의 가능성을 잠시 이해를 하지 못했을 뿐이다. 

다이어몬드도 처음에는 땅속의 하찮은 광물로 보이지만 잘 다듬은 다음에는 누구나 갖고 싶은 최고의 "보석"이 된다고 하지 않는가?

 

이번에 <부평의 작은 배호> 정상학님의 경우 이번 배호가요제 전부터 노래를 불러오신 분이지만 이제는 정식으로 가수인정서를 받아서

가수로서 '인정'을 받았다. 본격적으로 "가수의 날개"를 달고 서서히 "큰 바다"로 항해를 시작하였다. 그 분의 타고난 목소리와 앞으로

향상될 나름대로의 창법에 걸맞는 노래가 주어지고 좋은 노래할 환경이 주어진다면 "제2의 배호님" 으로서 노래의 대성을 의심치 않는다.

아니 그 분을 통해서 "제2의 배호님" 시대가 열리기를 기대해 본다.

 

그 분을 통해서 배호님이 더 기억되고 배호님 노래가 더 많이 불려지길 바라며 카페 <부천의 작은배호!> 역시 많은 팬들로 북적이고

"제2의 배호님" 가수로서 그 분의 여정에 행운이 함께하고  오로지 배호님 노래를 중심으로 <제2의 배호>로 발전해 나가길 기원 드린다.

 

♬ 오늘 듣고 싶은 배호의 노래 = 누가 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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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 배경음악은 배호님 <누가 울어>, 심수봉님 <그때 그사람>, 배호님의 <돌아가는 삼각지>와 <누가울어> (경음악),

  카페 <부평의 작은 배호!>의 배경음악인 <낙엽의 탱고>(박일남 노래), 배호님의 <능금빛 순정>과 <안개속으로 가버린 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