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단상(斷想)

[5.21 2009] 배호님이 부른 백영호님 노래와 눈물의 <동백아가씨>

BaiZZang 2009. 5. 21. 01:36

2003년 오늘, 5월 21일은 '동백아가씨"의 작곡가 백영호님이 돌아가신 날이다. 

 

백영호 (白映湖, 본명=백영효,1920.8.8- 2003.5.21) - 원래 이름에서 '효' 대신 예명에 배호(裵湖)의 이름과 같은 '호'(湖)를 넣어서 지음

* 예명인 영호(映湖)는 본 블로그 배경 사진의 의미와 완전 일치 합니다. 이거 꽤 대단한 발견이네 그려.

영호(映湖) = 호수에 비추어 보다는 뜻.

본 블로그 배경사진 의미 = 성 (castle)(=과거, 배호님)을 호수(=현재, 나 혹은 우리)에 비추어 본다(='映湖'의 뜻으로 해석)

 

백영호님은 1920년 부산 출생, 만주 신경음악학원 수료했으며 4천여곡을 발표해 5천여곡을 작곡한 반야월씨와 함께

각각 작사와 작곡 분야에서 최다 작가 타이틀을 지니고 있다. 1960년대는 그분의 최고 전성기 였다.

 

배호님과 관련한 백영호님의 간단한 약력: (음력 1920.6.24 - 음력 2003.4.21)

 

1964년 <동백아가씨 (한산도 작사, 백영호 작곡)> 발표 - 배호님도 <동백아가씨> 노래를 나중에 취입

1965년 <동숙의 노래> 문주란의 데뷔곡이자 문주란을 데뷔시킴 - 배호님도 <동숙의 노래>를 나중에 취입

1993년 제1회 <배호가요제> 개최하는데 추진위원으로 참여

- 제13회 <배호 가요제>는 2009.7.20 오후 7시, 충무아트홀에서 개최 예정

1999년 10월 20일 문화훈장 옥관장 - 배호님은 2003년 10월 20일 수상 (참고:10월20일은 문화의 날)

2003년 5월 21일 오전 폐렴 합병증으로 서울 신촌세브란스 병원에서 사망 - 배호님과 마지막 병원 일치, 사망시 폐렴 합병증 동반 

 

2009년 5월 14일 음력으로 4월 21일이며 6주기 기제사를 지냄  * 백영호님 가족 제사는 음력으로 지내심

2009년 7월 9일 백영호 작곡집 제작 출판일 (예정)

 

<백영효 기념관>: 1997년 오픈

 

위치 : 경남 진주시 상대1동 297-22 서울내과의원 내 전시장 (진주 시청에서 서쪽으로 가까운 상가 건물내)
         서울내과의원 전화 : 055-758-3679

백영호 선생님의 장남 백경권 (연세의대 세브란스병원 출신) 원장님이 아버지의 관련자료를 전시 

 

 * 배호님의 목소리로 들을 수 있는 백영호 작곡 노래 를 정리해 보았습니다. 

 

밑줄 표시는 백영호 작사와 작곡 노래이고, = 표시는 오리지날 가수 표시

 

<그날까지는><내고향 남촌 ("남촌이 그리워서 눈을 감으면...")><동백아가씨=이미자><동숙의 노래=문주란>

<비내리는 명동거리><비내리는 밤길><사랑은 하나><사랑의 옛고향><애타는 사나이>><역에선 가로등=진송남 >

<영아의 노래=정훈희><오늘은 고백한다><울어라 열풍아=이미자><웃으며 가요><임의 목소리>

<잊을수 없는 연인=이미자><죄많은 밤비><지금도 변함없이><지평선은 말이 없다=이미자>

<찾아온 고향("모처럼 찾아왔네 내자란 고향...")><찾아온 서울거리><첫 길><추억의 소야곡=남인수>

<추풍령=남상규><황포돛대=이미자>

 

배호님 노래 속에 백영호님 작곡의 노래는 대략 25곡 정도. (현재는 들을 수 없는 노래는 제외 했음)

 

배호님 노래의 작곡자로는 배상태님 곡이 가장 많고 백영호님이 두번째로 많다. 그 다음이 김광빈님이시다. 

  

* 백영호님의 최대 히트곡 <동백아가씨>에 관련된 재미나는 이야기:

 

1. 1964년 여름 영화 <동백아가씨> 주제가는 원래 취입하려던 그 당시 인기가수 최숙자 대신 작곡한 백영호님의 추천으로 신생 레코드사

(미도파 레코드)에서 취입료가 저렴한 무명의 신인가수 이미자님이 취입하였다. 

 

2. 영화 주제가<동백아가씨>앨범의 앞면이 아닌 뒷면 (첫번째 곡)에 실린 노래 였지만 음반 발매후 오로지 이미자의 <동백아가씨>만

방송을 타면서 '연속 31주' 전국 1주라는 한국 가요사에 전무후무한 기록을 남긴다.  (이 앨범에는 황포돛대도 같이 수록됨)

 

3. 음반 판매는 사상 최초 100 만장 (비공식 집계), 20만장 (레코드사 집계) 돌파 하였다. - 지금은 CD시대라 LP판 전무후무 기록으로 확정.

그럼 그 당시 집에 전축도 별로 없던 시절이라고 하는 데 그 많은 레코드는 다 무엇으로 음악을 들었을까? 궁금하네요.

 

첫 발매 음반은 지구레코드사가 몰래 '미도파'레코드사 이름으로 발매하였다가 소송당하기도 하였으나 대형 레코드사로 성장발판이 되고

반주는 첫 앨범에 실린 음이 너무 높은 톤이라 다시 발매한 앨범은 낮게 조정하였다고 한다. 

 

4. 1965년 말 "왜색이 짙다"고 '방송 금지곡'으로 처분받았다가 1987년 8월 해금되었다.

 

이미자님 회고에 의하면 박정희 대통령에게는 '애창곡'이었고 '방송 금지곡' 사실을 모르고 청와대 행사에서 자주 즐겨 불렀다고 함

1979년 5월 후쿠다 전 일본총리 방한 기념 청와대 만찬에서 이미자님이 <동백아가씨>를 부르는 장면이 KBS 제2TV 통해 방송 (2006년)

되어 박정희 대통령이 그 당시 '방송 금지곡'을 청와대에서 부르게 한 내용이 논란이 되기도 하였다.

 

또 1966년 일본 빅터레코드사에서 이미자님의 <동백아가씨>를 일본식으로 제목과 가사를 조금 바꿔서 2번 발매하기도 하였다. 

 

5. "수많은 사람을 잠 못 이루게 할 정도"로 인기 있던 이미자님은 그 당시 극장 출현료가 통상 출현료의 20배 이상을 받으며 출현하였다.

무명신인에서 하루아침 - 아니 몇달만에 -초대박 '신데릴라'로 변신하여 계속 힛트곡이 나와 지금까지 '이미자 시대'를 시작할 수 있었다.  

 

그 당시 파월장병 인기 1위, 이미자님은 5년간 장병위문공연을 완전히 눈물바다로 만듬 - 월남 대통령 문화훈장 수여 (최초 외국 문화훈장)

 

"헤아릴 수 없이 수 많은 밤을 내가슴 도려내는 아픔에 겨워

 얼마나 울었던가 동백아가씨 그리움에 지쳐서 울다 지쳐서..."

 

* 배호님 <돌아가는 삼각지>는 20여주 (6개월 정도), 이미자님 <동백아가씨>은 31주  전국 가요 1위를 차지하며 "메가톤급" 히트하였다.    

그래서 그 후 <돌아가는 삼각지>와 <동백 아가씨>는 영원한 국민가요가 되어 오늘까지 불려지고 있다.

 

 

♬ 오늘 듣고 싶은 배호의 노래 = 동백아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