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단상(斷想)

[8.08 2009] 배호님 <안개낀 장충단공원> 취입과 올림픽 마라톤 우승

BaiZZang 2009. 8. 8. 18:21

 

 

"비탈길 산길을 따라 거닐 던 산기슭에....지난날 이 자리에 새긴 그 이름 뚜렷이 남은 이 글씨..." 

"수많은 사연에 가슴을 움켜지고 울고만 있을까?" -  안개낀 장충단공원 가사 일부

 

 

어제는 입추이지만 밤에는 귀뚜라미 소리는 아직 들리지 않고 매미소리가 여전히 시끄럽다. 열대야이다. 

오늘 날씨도 태풍이 우리나라 근처에 오고 있다지만 흐린 날씨에 낮에 섭씨 32도에 이르는 무더운 날씨이다. 

 

오늘은 8월 8일, 여러 뜻이 있는 날이다. 먼저 오늘 날짜는 작년 북경 올림픽 개막일이다.

 

2008년 하계 북경 올림픽이 8월 8일 시작되어 8월 내내, 작년 여름은 올림픽과 함께 더위와 함께 잘 지나갔던 것 같다.

중국사람은 숫자 중에서 8 자를 가장 좋아해서 "2천 8년 8월 8일 오후 8시"에 개회식을 하였다.

간단히 기록하면 8/8/08 8 PM 이다.

 

신문을 보니 오늘은 "제2회 포도데이"라고도 한다. 포도출하 시기가 8월이고 8자는 포도 모양으로 비슷하여 그렇게 제정하였다고 한다.

더위가 좀 들어갈 때 포도밭에 직접 찾아가서 포도와 더불어 여러 음식을 먹으며 가을 속으로 계절은 흘러가게 된다.  

 

또한 MBC TV 개국일이 1969.8.8 이어서 오늘이 문화방송 TV 40주년이 되는 날이라고 한다.  이때는 배호님이 한창 활동하던 시기이다.

처음에는 흑백 브라운관 TV로 방송을 시작하였다가 서울 올림픽때 칼라 방송 시작, 이제는 HD 방송에 LCD, PDP 수신기 시대다.

참고로 MBC 라디오는 1961.12.12 개국하였다.

 

무엇보다도 배호님의 경우 오늘 날짜 8월 8일을 생각해보면, 바로 1967년 8월 8일 <안개낀 장충단공원>을 취입하신 날이다.

 

그 당시 <돌아가는 삼각지> 녹음으로 유명한 장충동 스튜디오에서 취입하고 아세아레코드에서 앨범이 발매가 되었다. 

배호님은 1967년 취입한 후 그 후 3번 더 취입하여 <돌아가는 삼각지>의 경우 같이 무려 같은 노래를 4번이나 취입하였다.

 

<안개낀 장충단공원>을 취입할 1967년 8월 당시 <돌아가는 삼각지>가 엄청난 히트를 기록 중이어서 이를 발매했던 아세아레코사에서

<돌아가는 삼각지>의 작곡한 배상태님에게 부탁하여 <안개낀 장충단공원>이란 곡을 급하게 만들어 다시 한번 노래를 녹음하게 된 것인데,

배호님의 건강 상태는 <돌아가는 삼각지> 부를 때 처럼 신장염으로 몹시 좋지 못하여 그해 여름 8월에는 병원에 입원하고 있을 때였지만

병석에서 연습을 한 후 어렵게 녹음을 하였고 역시나 <돌아가는 삼각지>에 이어 엄청난 두번째 빅 히트를 기록하게 되었다.

 

배호님이 입원한 1967년 여름 그 때 청량리 위생병원에서 배호님에게 3-4 년 정도의 시한부 인생을 선고하였고 배호님 상태는 신장병으로

인하여 몸이 붓고 걷기도 힘들 정도에 이르기도 하였으나 다행히 9월말 퇴원하여 작곡자 배상태님과 함께 장충단공원을 산책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였는데 이 사진이 바로 얼마 전 중앙일보 기사로 나온 산책하면서 뒤를 살짝 쳐다보는 배호님의 사진이다.

 

배호님은 그 후 10월 다시 공연을 시작하다가 쓰러지기도 하고 11월부터는 전국 순회공연에 나서기도 하였다. 하지만 병원에서는 안정과

가료를 적극 권하였으나 팬의 부름과 경제적 사정이 이를 허락하지 않아서  배호님은 실제로는 "목숨을 담보로" 놓고 노래하는 것이었다. 

걷기도 힘들고 노래하기도 숨이 차기도 하여 악보에 숨표를 더 적어 넣기도 하고 천재적인 박자 감각으로 이를 극복하며 노래하였다.

더군다나 숨이 차고 가래와 기침이 나왔지만 노래만 들어가면 기침도 않고 노래하는 의지는 정말이지 대단한 천부적 소질이라 해야겠다.

 

그래서 일까? 그 분의 노래 속에서 가끔씩 한숨과 가슴을 파 헤치는 깊은 감동을 주는 "신들린 듯한" 목소리가 더 절절히 들리는 것 같다.     

 

<안개낀 장충단공원>은 최근연도에 들어 한국인의 애창곡 조사에서 배호님의 노래 중 가장 널리 불리우는 곡으로 선정된 바 있다.

 

<안개낀 장충단공원>에 대한 기타 설명은 본 블로그의 다음 글들을 참고하면 좋겠다.

 

[배호 노래 Best 5] 배호 노래 5대 애창곡 (裵湖 5大 愛唱曲) 

[5. 27 2009] 안개낀 장충단공원 일까? 아니면 장춘단공원 일까?

 

배호님은 <안개낀 장충단공원>에서 [장충단공원]과 [장춘단공원] 중 어느 쪽으로 발음을 하셨을까?

장춘단공원의 유래는 어떤 것이였을까?  하는 점은 5월 27일 자 블로그에 잘 적혀져 있다.

 

(아래 내용은 본 블로그 5월 27일 자 글 일부 내용)

 

* 장충단 공원 (奬忠壇公園) : 

 

위치: 서울 서울시 중구 장충동2가 196 번지 (197번지)

 

1900년 9월 (광무 4년, 을미사변후 5년 되는 해): 건립 당시 공원이 아니고 봄 가을에 제사 지내던 곳: "장충단 사당"  

을미사변 (1895년 8월 20일, 고종 32년, 일본 자객이 '명성황후'를 죽인 사건)에 희생된 충신

(궁내부 대신 이경직과 시위대장 홍계훈 등)과 나중에는 임오군란에 희생된 열사들의 제사도 지내던 장소

1910년 8월 22일: 일본에 의해서 한일합병으로 문을 닫게 됨

1920년 일본은 장충단공원으로 이름하여 벚꽃을 심고 공원시설을 설치하였으며, (마치 창경궁이 창경원 된 것 처럼)

심지어 안중근의사가 암살한 이토히로부미(伊藤博文)를 위한 절인 박문사(博文寺)까지 건립하였다.

그 후 여기저기 옮겨다니다 1969년 이제는 공원 입구에 자리잡은 ‘장충단’(奬忠壇)' 비석만이 그때를 추억하게 해준다.

원래 장충단 위치는 현재 어린이 야구장 근처로 추정되고 있다.

 

남산 기슭에 자리한 장충단공원은 봄철에는 '화려한' 벗꽃축제가 열리고 가을(10월8일)에는 '조그마한' 장충단제(奬忠壇祭)열린다.

 

오늘도 배호님의 노래 <안개낀 장충단공원>에는 안개가 아직 다 걷힌 것 같지 않다.

왜냐면 안개가 많이 끼어서일까...아직도 멀리서 <안개낀 장충단공원>이 <안개낀 장춘단공원>으로 보이는 분이 많으니까 말이다.

 

이렇듯 8월달에는 한일합방 (1910.8.22), 해방 (1945.8.15), 을미사변 (1895.8.20) 이외에도 유난히 일본과 관계되는 일이 많다.

 

내일 8월 9일은 1936년 손기정 선수가 베를린 올림픽에서 동양인 최초, 일제시대여서 일장기를 달고 올림픽 마라톤 1위를 한 날이다.

 

그 당시 일장기는 태극기로 바뀌어 1992년 8월 9일 제25회 올림픽에서 황영조 선수가 다시 56년 지나서 마라톤 1등을 하게 되었다.

8월 9일 두 분의 마라톤 우승날이 같은 날. 대단한 우연의 일치라고 해야 하나? 나라 전체가 민족에 대한 자긍심과 감격으로 가득찼던 날. 

 

배호님의 <돌아가는 삼각지>에 이은 <안개낀 장충단공원>을 1967년 8월 8일 취입한 두번째 노래가 마라톤 우승의 두번째 감격 만큼이나

오늘도 배호님 노래에 유난히 "약한" 나의 마음 속에 잔잔한 감동으로 울려 퍼지고 있다.

 

 

♬ 오늘 듣고 싶은 배호의 노래 = 안개낀 장충단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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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래가사를 보시려면 LIST 클릭하여 듣고자 하는 노래 가사를 클릭하면 됨 

 

* 배경음악은 배호님의 <안개낀 장충단공원>, 정훈희님의 <안 개>, 조수미님의 <나 가거든(If I Leave)> (명성황후 앨범),

  배호님의 <황성 옛터>, <안개속으로 가버린 사랑> (이상 5 곡)

 

* <안 개>는 여자가수 정훈희님의 데뷔곡이자 대표곡이고 배호님의 <안개낀 장충단공원>과 함께 1967년 전국을 안개로 뒤 덮은 노래

* <나 가거든 (If I Leave)>는 조수미님이 부르는 '명성황후' 뮤지컬에 나오는 '명성황후'의 죽음을 앞둔 구슬픈 아리아.

"나 슬퍼도 살아야 하네, 나 슬퍼서 살아야 하네...나 슬픔까지도 사랑했다 말해 주길...내 슬픔까지도 사랑하길..." 

* <황성 옛터>는 1928년 이애리수가 부른 너무나 유명한 한국 가요의 효시가 되는 노래, 옛 고려의 성터 (평양)를 보고 일제시대 시절

  나라 잃은 슬픔을 달래던 노래, 서울 '단성사' 무대에서 막간에 불렀다가 온 극장안이 눈물바다가 되고 공연이 중단이 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