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단상(斷想)

[5.27 2009] 안개낀 공원은 장충단공원 일까? 아니면 장춘단공원 일까?

BaiZZang 2009. 5. 27. 01:21

배호님 노래 중 안개낀 공원은 <안개낀 장충단공원> 일까? 아니면 <안개낀 장춘단공원>일까?

 

장충단, 장춘단, 장충당, 장춘당... 좀 헷갈리는 것 같은데 잘 생각해 보면 정답은 장충단공원(奬忠壇公園) 이다.

 

1. 장충단 공원

 

1975년부터 1990년까지 네이버의 옛날 신문을 검색해 보면, 서울 중구 장충동의 이 공원의 이름은 다음과 같이 나타나 있다. 

 

장충단공원      159건 (76년 - 85년)

장춘단공원       5건 (77년 2건, 80년 3건)

장충당공원       3건 (77년 1건, 80년 2건) 

장춘당공원   1건 (84년, 경남 사천군 곤양면 성내리 소재 공원 지칭, 장충단공원과는 관계없어 제외)

 

장충단공원이 95.2 %, 장춘단공원이 3 %, 장충당공원이 1.8 % 이다. (장춘당공원을 제외하면)

 

그러므로 장충단공원이 대다수이고 무엇보다 결정적인 것은 배호님의 앨범에 모두 <안개낀 장충단공원>이라고 되어 있다.

<장충단공원>이 틀림 없어 보이는데...<장춘단공원>이라고도 몇번 표기한 걸로 봐서 그렇게 부르는 경우도 있었다는 의미이다. 

 

장충단 공원 (奬忠壇公園)은 한자로 단어의 뜻을 생각해보면

장(奬): 권면하다, 돕다, 칭찬하다

충(忠): 충성, 진심

단(壇): 단, 흙을 쌓아만든 단

이므로 충성을 칭찬 내지 권면 (=권하여 힘쓰게) 하기 위하여 만든 (제)단 이란 뜻이 된다.

 

* 장충단 공원 (奬忠壇公園) : 

 

위치: 서울 서울시 중구 장충동2가 196 번지 (197번지)

 

1900년 9월 (광무 4년, 을미사변후 5년 되는 해): 건립 당시 공원이 아니고 봄 가을에 제사 지내던 곳: "장충단 사당" 

을미사변 (1895년 8월 20일, 고종 32년, 일본 자객이 명성 황후를 죽인 사건)에 희생된 충신과

나중에 임오군란에 희생된 열사들의 제사도 지내던 장소

1910년 8월 22일: 일본에 의해서 한일합병으로 문을 닫게 됨

1920년 일본은 장충단공원으로 이름하여 벚꽃을 심고 공원시설을 설치하였으며, (마치 창경궁이 창경원 된 것 처럼)

심지어 안중근의사가 암살한 이토히로부미(伊藤博文)를 위한 절인 박문사(博文寺)까지 건립하였다.

그 후 여기저기 옮겨다니다 1969년 이제는 공원 입구에 자리잡은 ‘장충단’(奬忠壇)' 비석만이 그때를 추억하게 해준다.

원래 장충단 위치는 현재 어린이 야구장 근처로 추정되고 있다.

 

근데 인터넷으로 <장춘단공원>을 검색해 보면 적지 않은 많은 사람이 <장충단공원>대신 <장춘단공원>으로 표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궁금하다. 다들 왜 <장충단공원>대신 <장춘단공원>으로 표기하고 계실까? 그 이유는 과거에 <장춘단공원>으로도 불렸기 때문이다.  

 

 * 배호님의 <안개낀 장충단공원>노래도 자세히 들어보면 '장충단공원'의 발음을 [장춘단공원]으로 노래하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2. 장춘단공원

 

<염상섭 소설어사전> (곽원석, 고려대학교 출판사 간행)을 찾아보면, 장춘단 = '장충단'의 오기(誤記) 라고 나와 있다.

이 소설사전에는 아래와 같은 예가 실려 있다.

 

"삼춘 행락도 이제 마지막이라고 들끓어 나오느니 사람의 떼요. 장춘단으로 창경원으로 밀려드느니 사람의 물결이다"

 출처: '불연속선' 1:3 매일신보

 (참고: 옛날식으로 표기된 글자는 본인 나름대로 요사이 표기로 바꾸어 놓았음)

이라고 하여 일제시대에는 '장춘단'으로 불리웠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알 수 있다.

 

일본인들은 '장충단'을 공원으로 만들면서 수 많은 벗꽃 (일본 국화인 사꾸라)을 심고 장충단 면적을 줄여 작은 공원으로 만들었다.

그래서 일본 국화인 사꾸라 (벗꽃)가 피는 봄의 한자말이 춘(春)자가 들어간 '장춘단공원'으로 이름도 변하게 되지 않았나 생각된다.

 

앞에 인용한 <불연속선>이란 근대소설가 염상섭(1897.8.30 ~ 1963.3.14)님이 1936년 한해 '매일신보'라는 신문에 연재한 장편소설이다.

즉, 일제시대부터 '장춘당'으로  불려 졌다는 것이다. 아마 해방 후 서서히 본래 이름 '장충단'을 회복하기 시작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지금도 장충단'공원'이지 원래 나라를 위해 숨진 충신들 제사를 지내는 원래 장충단의 제사지내던 '신성한' 모습으로 회복된 건 아니다.

 

앞의 인용된 소설에 나오는 창경원도 일제가 창경궁인 우리의 대궐을 동물원, 식물원, 박물관으로 1909년 만들었던 것인데 1980년 중반에

비로서 동물을 서울대공원으로 옮기고 벗나무를 모두 제거하고 본래 창경궁의 모습으로 되돌아 올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아직도

남산 기슭에 자리한 장충단공원은 봄철에는 '화려한' 벗꽃축제가 열리고 가을(10월8일)에는 '조그마한' 장충단제(奬忠壇祭)열린다.

 

오늘도 배호님의 노래 <안개낀 장충단공원>에는 안개가 아직 다 걷힌 것 같지 않다.

왜냐면 안개가 많이 끼어서일까...아직도 멀리서 <안개낀 장충단공원>이 <안개낀 장춘단공원>으로 보이는 분이 많으니까 말이다.

 

 

♬ 오늘 듣고 싶은 배호의 노래 = 안개낀 장충단공원